| 제목: 농민들의 분노 |
"난 아무것도 몰러.."
아침나절 부터 고 홍덕표씨의 빈소를 지키고 있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 문인성(63)이장은 기자가 다가가자 도리질부터 했다.
홍씨와 함께 11월 15일 농민대회에 참가했던 문 이장은 그 당시 상황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듯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홍씨와 함께 있다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부지(?)한 문씨는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고개를 떨군 채 "모른다"는 말만 되뇌었다.
"그 때 이야기를 들으려는게 아니라요, 홍 아버님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제서야 문이장은 "그래? 그거면 내 잘 말해줄 수 있지. 내가 43년을 같이 살았응께.."라며 고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에..긍께..그이가 사람이 참 성실하지. 고생도 음청 많이 했고."
홍씨의 빈소에서 한 나절을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성실하고 착하고 고생을 많이 한 사람'. 홍씨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술, 담배는 입에도 못댔어. 일도 성실히 잘하고 놀기도 좋아하고 어디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가식없는 사람이라서 동네 사람들이 다 좋아했어."
"비 맞고 화장실 안가도 된다고 좋아했는데..."
9살 때 양가 부모를 여의고 15살 때 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한 홍씨는 어려서부터 고생복을 타고 났었다고 문 이장은 전했다.
"돈이 없어서 생활하는데 곤란을 많이 겪었지.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뚝뚝뚝뚝 떨어져서 집에 가보면 방안에 다라이 몇개씩 갖다놓고 물 받고 살았어 그 집이.."
홍씨의 아버지 때부터 살았던 집이었지만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큰 맘먹고 올해 5월 헌집을 헐고 양옥집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집을 지으려니 어디 돈이 있어? 면사무소에서 2천만원 대출받고 둘째 사위가 거기에 돈을 더 보태서 집 지었지. 둘째 사위가 욕 봤지."
10월 중순 경 완공 된 집을 보고 홍씨가 뛸 듯이 좋아했다고 문 이장은 기억했다.
"아 좋지 안좋아? 이제 비 맞고 화장실 안가도 된다고 을매나 좋아했는디. 근데 그 좋은 집서 한달 좀 더 살았나? 한달 정도 살다가 이 야단이 난거니 억울해서 워째 살아."
"1600평 소작지으면 얼마 남는 줄 알아요? 백만원 좀 더 받을랑가.."
평생 소작살이를 해온 홍씨는 금년에도 1,600평 소작을 지으며 하루하루 품을 팔아 생계를 꾸려갔다고 한다.
"1,600평 소작지으면 얼마 남는 줄 알아요?"
문 이장은 갑자기 계산을 한번 해보라며 부르는 대로 받아 적으라고 했다.
1,200평 1필지에서 수확하는 쌀은 25가마니. 보통 한가마니에 18만원씩 받던 쌀값이 올해는 폭락해 한가마니당 12만원씩 잡아야 한다고 했다.
"논 1필지에 1,200평인데 1필지 갈고 로타리 하는데 16만원, 모 심는데 10만원, 나락추수하는데 16만원, 농약 비료값은 20만원이 들어. 다 합하면 얼마야? 62만원이지? 거기에 나락 말리는 건조기로 실어가는데 4만원, 건조기로 말리는데 10만원, 공판장까지 가는 운반비로 80키로 1가마 2,400원씩 들어."
"그니까 얼마여. 3백만원에서 운반비다 뭐다 82만원을 빼봐. 그것만 빼나? 소작료 내야지. 소작료가 쌀 10가마니니까 120만원을 더 빼면 1필지 당 98만원 밖에 안남어. 한해 쌔빠지게 일해봤자 98만원 손에 쥘까 말까야."
1600평 소작을 짓고 산 홍씨는 1백만원 좀 넘는 돈을 가지고 한 해를 넘겨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홍씨는 농사지으면서도 품 팔고, 아줌씨는 겨우내 쑥캐고 냉이캐서 근근히 버텼던거 아니여. 홍씨만 그런줄 알아? 농사짓는 사람들 다 이렇게 사는거여."
옆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박성섭(67)씨가 거들고 나섰다.
"아 그러니까 농민들이 데모를 안하고 배겨? 쌀값은 폭락하지, 농약값 비료값은 천정부지로 솟지..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여. 버텨낼 재간이."
11월 15일 홍씨와 문이장과 함께 여의도 국회앞에 섰었던 박씨는 그날 피투성이가 돼 쓰러져 있는 홍씨를 부축하다 경찰이 휘두른 진압봉에 팔을 다쳤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미치광이 살인진압이 벌어졌던 그날로 돌아갔다.
"그 때 사람들이 안말렸으면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
"농민의 한사람으로서 농민시위한다고 하길래 5명이 따라 나섰지. 농민회에 가입한 양반들은 매일 욕 보고 있는데 그냥 앉아서 속만 끓이고 있을 수 있어야지.."
농민회 회원이 아니었던 홍씨를 비롯한 문 이장, 박씨 등 5명은 정부의 대책없는 쌀개방 정책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어 고생하며 투쟁하고 있는 농민회에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고 했다.
"아따 경찰들 끔찍하데. 그날 우리는 중간에서 멀찍이 구경하고 있었는데 이것들이 막 밀고 들어오는데..나랑 홍씨랑 막 뛰었는데 내가 앞에 섰었어. 예전에 홍씨가 발가락이 잘려서 뛰는데 어려움이 있었단 말이지."
정신없이 뛰던 찰나 홍씨가 안보여 뒤를 돌아보니 홍씨는 화단 옆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경찰의 곤봉세례는 쓰러진 홍씨를 부축해가는 박씨에게도 무차별로 쏟아졌다.
"그때 주변에서 사람들이 안말렸으면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몰러.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성실히 살던 사람이 달리 죽은 것도 아니고 맞아죽다니 너무 가슴이 아파..내가 죄인이 된거 같애.."
소주를 한 입에 털어넣으며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고 되뇌이던 박씨와 문이장은 밤이 깊도록 홍씨의 빈소를 떠날 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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