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드디어 목을 조여오고 있다 |
아침에 일어나보니 겨울 이별이 아쉬운 듯, 화단에 하얀 눈을 뿌려놓았네요. 찬바람이 귓전을 때리던 때가 엊그제 같더니만 봄을 맞는 지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아마도 대지에는 새 생명이 움트겠지요.
그제 방문자들 가운데는 눈에 띄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강남구지부 임원들입니다. 2리터짜리 물을 한 상자 들고 와서 당분간은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자기들 걱정부터 합니다.
1350명의 직원 중 올해 350명이나 감원할 계획이라나요?
IMF 전후에는 2054명이었던 직원이 현재는 1350명인데도 구청장은 금년 안에 직원 수를 1000명 이내로 줄이겠다고 한답니다. 노조에서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노조의 존립근거가 고용안정일진대 고용안정을 지키지 못하면 노조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나 가장 큰 걱정이 몇몇 간부들만 움직여서는 싸우기가 정말로 버겁다는 이야기 등등 헤아릴 수 없는 고민을 늘어놓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강남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총액인건비제의 시범기관입니다. 총액인건비제를 시범운영하면서 가장 모범적인 아웃소싱의 틀을 만들어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사람이 강남구청장인 것 같습니다. 7% 증원 4개월 만에 10%를 감원하겠다는 약 주고 병 주는 식의 오락가락 행정을 펼치는 부천시보다는 차라리 일관성 있어 보입니다. 이렇듯 직업공무원제가 폐기되고 민간이 공공성을 점령하기 위한 제도가 총액인건비제인 것입니다.
新自由主義 체제하에서 사용자의 논리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지출을 최소화하는 비인간적 태도라면 노동자(노동조합)의 논리는 당연 인간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공무원들에게는 노조가 아직 생소하고 동력 또한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동력의 근원은 조합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지요. 노조라는 배가 항해할 때 정작 배를 움직이는 연료는 조합원인데 말입니다.
예를 들지요. 국민의 정부 시절 발전부문 민영화 문제로 몇 년간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발전소의 전 조합원이 규합하여 민영화를 저지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600여명이 해직되는 아픔이 있었으나 1년 안에 위원장을 제외한 전 조합원의 복직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 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정부 때 경찰청의 고용직(전부 여직원으로 구성)이 전부 해직의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그들은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노조를 만들어 힘차게 싸웠습니다. 결과는 위원장과 사무국장만 해직되고 전 조합원은 기능직으로 상향되는 개가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단식을 하는 기간에 우리 조합원들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숨죽이는 듯 하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문자메시지를 통하여 우리 조직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 조직이 더 큰 위기에 봉착할 때 분연히 일어날 수 있음을 문자메시지를 통하여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조합원 여러분!
노동운동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기꺼이 그 희생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분명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인 것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관점에서 사용자와는 별개로 자기들의 조직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배자의 논리에 휩쓸리고 쇠뇌당할 때 희생자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기득권세력의 지배논리가 있습니다.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한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죽임을 당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절망과 저항의 의미로, 조소적인 반어법에 대하여 지배논리로 왜곡하여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를 ‘法實證主義’라는 고상한 이론으로 포장합니다. 법실증주의, 얼핏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법이 처음부터 하늘에서 만들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악법은 기득권세력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법이지요. 사실이 그러한데 약자에게 굴레를 씌우기 위한 악법까지 지켜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래 전 프랑스의 실화가 사실로 답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아르노를 교회법의 이름으로 처형시킨 재판관 코라스가 10년 후에 그 법에 의하여 처형당한 사건입니다. 이렇듯 악법의 화살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역사를 통하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악법과 싸우고 있고 조합원들의 자존심과 양심의 자유를 짓밟은 시장과 부시장의 부도덕에 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패배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생존권마저 박탈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여 기필코 승리할 것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하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독려하고 있는 CMS 이체 사업에 조합원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망설이거나 차일피일 미루는 조합원들께서는 참여로 우리의 정당성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이제는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6. 3. 2
물오름달 둘째 날에 부천시지부장 이종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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